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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잡담 및 공략/기타 게임

텍스트 퍼즐로 만들어낸 반전, <미제사건은 끝내야 하니까>

by 개암반역가 2024. 2.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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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 엔딩의 리뷰가 들어 있으므로 스포를 원치 않으신 분들은 뒤로가기를 눌러주세요 *

 

 

2~3시간 이내로 클리어할 수 있는 국산 추리 게임 <미제사건은 끝내야 하니까>. 텍스트로 퍼즐을 풀어가는 독특한 방식이라고 해서 구매를 해봤다. 처음에는 경찰 제복의 한 여성이 노년의 여성을 찾아오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노년의 여성은 경찰에 재직할 당시 '서원이 실종사건'을 전담했다. 결국, 서원이는 찾지 못한 채 해당 사건은 미제사건으로 남았다. 그녀를 찾아온 현직 경찰은 당시 주변 인물들의 증언을 토대로 사건을 재구성한다.

실종 아동의 아버지가 자기 아이를 찾지 말아달라고 애원하는 말로 시작하는 퍼즐. 사건에 어떤 진상이 있는지 궁금해진다.

SNS처럼 증언에는 #와 @가 붙어 있다. @를 누르면 인물에 대한 정보가 조금씩 열리고, #를 누르면 비슷한 해시태그가 달린 대화를 열어볼 수 있다. 한 번 사용하면 중간 밑줄로 지워지는데, 중간중간에 지워지지 않은 해시태그는 나중에 해금되는 대화를 여는 단서가 된다.

 

주변 문방구와 주민센터 직원, 유치원 교사도 인물에 등록되어 있다. 하지만 서원이 실종사건인 만큼 주로 부모님과 실종 당시 주변에 있던 인물에 서사가 집중된다.

게임을 진행할수록 대화의 개수는 많아지는데, 지우지 않은 해시태그가 어디에 있는지 전체 지도에서 확인하기가 어려웠다. 아직 풀지 못한 퍼즐은 색깔로 쉽게 확인할 수 있고(오른쪽 하단에 저런 식으로 전체 지도가 뜬다), 퍼즐 풀 때 필요한 태그는 하얗게 하이라이트 표시가 되는데... 지우지 않은 해시태그는 표시가 안 되는 것 같았다. 그 점이 아쉬웠다.

 

그래도 퍼즐을 푸는 색다른 방식은 흥미로웠다. 하나씩 해금되는 대화를 누가 말했는지 선택하고, 대화의 순서를 조정할 수 있는데 그 과정에서 의외의 인물이 이 말을 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서서히 반전이 열린다. 사건의 진상은 최대한 간략하게 접은 글로 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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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서원은 태어난 지 108일만에 사망했다. 크게 충격을 받은 서원이의 엄마는 아이의 사망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서원이가 아직 살아 있다고 생각한다. 어느 날, 길에서 죽은 자기 딸과 똑같은 이름인 '최서원'을 만난 서원이의 엄마는 그 아이를 집에 데려오게 된다. 사건 3일 만에 자수한 영어 강사는 그 사람의 전 남편이다. '서원이 실종사건'이 서원이 엄마가 모르도록 영원히 미제로 남아야 한다는 말의 진실은 바로 이것이다. 그 죽음을 인정하지 못하는 엄마한테는 아이가 계속 살아 있어야 하기 때문.

퍼즐을 다 끝내면 두 가지 엔딩을 볼 수 있다. 첫 번째 엔딩은... 이름 붙이자면, 피해자와 담당 형사, 선후배로 재회. 당시 실종 아동이 자라서 경찰이 됐고, 그때 자신을 집으로 데려다준 경찰 선배와 다시 만난다는 내용이다.

두 번째 엔딩이 진엔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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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노년의 여성은 당시 유괴범이었던 송민영. 오랜 세월 동안 제 자신이 누구인지도 잊어버린 채 다른 사람 행세를 하며 살았다. 진엔딩에서는 송민영에게 그 사실을 일깨워주면서 그동안 갇혀 있던 방에서 나가자고 말한다.

중간에 대화 순서를 바꿔야 한다는 걸 몰라서 해시태그를 일일이 다 열어본다고 꽤 헛짓을 했다. 그런데도 플레이 시간은 3시간이 채 안 된다. 그 정도로 볼륨이 짧은 게임이지만, 반전을 플레이어가 직접 깨달을 수 있는 퍼즐 방식은 꽤 새로웠다.

 

다만, 일상 대화에서 잘 쓰지 않는 단어가 많이 사용돼서 인게임 텍스트라기보다는 문학 작품 같은 느낌이 들었다. 초반에 경찰 제복을 입은 사람과 전경이 처음 만나는 장면에서도 '내 머릿속은 색인을 잃어버린 오래된 도서관 같다고 하더군요'라는 말이 나왔다. 이런 문장이 한 사람만의 특성이면 새롭게 다가오는데, 등장하는 모든 인물이 저런 서술 방식을 사용한다. 발화자가 누구인지 알아차리기 어렵게 하려는 트릭인가 싶기는 하다. 말투만으로 누가 한 말인지 쉽게 파악해 버리면 텍스트 퍼즐로서 재미가 떨어질 테니까.

 

게임하다가 중간중간에 사전이 필요할 만큼 사용 빈도가 낮은 단어를 맞닥뜨리면(무슨 뜻인지 몰라도 내용 파악이 안 될 만큼 중요한 대사는 아니긴 하다) 갸우뚱하게 되는 것도 사실이다. 텍스트를 기반으로 한 게임이기는 해도 이 정도로 문장에 힘을 줄 필요가 있었을까 그 부분은 의문이 남는다. 비주얼 노벨에서 유려한 문장을 별로 본 기억이 없어서 생소했다.

 

미제사건을 소재로 만든 게임이다 보니 플레이하기 전에 나도 모르게 떠올리는 전형적인 스토리라인이 있다. 그 스토리라인에는 명확하게 피해자가 존재하고 그 사건을 저지른 흉악범은 여전히 사회를 돌아다닌다. 유일하게 위안이 되는 것은 이 사건이 현실이 아니라는 것뿐이지만, 피해자에 과도하게 집중하는 스토리를 여럿 보다 보면 게임을 하는 것 자체가 2차 가해를 답습한다는 느낌이 들곤 한다.

 

그러나 <미제사건은 끝내야 하니까>의 스토리는 그 전형적인 스토리라인과 다르다. 골든타임을 넘긴 유괴사건에서 끔찍한 피해를 당한 아이는 없다. 미제사건 때문에 마음에 응어리가 진 유가족도 없다. 결말을 보면 오히려 그 가해자에 대한 연민이 생겨난다. 진실을 밝히고 나면 가해자는 어린 딸을 잃고 정신을 놓아버린 가여운 인물이 되기 때문이다. 가해자가 저지른 죄가 크지 않기 때문에 그 연민과 동정에 죄책감이 들지는 않는다. 가해자에 부여하는 서사가 이 게임에서는 거슬리지 않았다.

 

고통받는 사람이 없이 모두가 평온한 미스터리 게임. 역설적인 이 한 문장으로 이 게임을 요약할 수 있을 것 같다. 단기간에 클리어한 이후에도 여운이 꽤 길게 남는 게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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