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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모든 것의 후기

<미기와 다리>

by 개암반역가 2023. 11.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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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포 주의 *

 

 

 

 

 

얼마전부터 유투브 쇼츠 알고리즘에 개그 만화의 한 장면이 나오기 시작했다. 노란 머리의 쌍둥이가 한 명인 척 속이고 입양을 가서 벌어지는 이야기였다. 똑같이 생긴 두 사람이 집과 학교에서 교대로 밥을 먹고, 교대로 수업을 듣거나 시험을 치는 모습이 사뭇 진지한 분위기인데도 웃음이 새어 나왔다. 음울한 분위기와 우스꽝스러운 분위기가 공존하는 작품이 매력적이어서 이북을 구매해서 보게 됐다.

 

 

7권 정도의 짧은 분량이다 보니 하룻밤만에 다 읽었다. 읽으면 읽을수록 처음 쇼츠를 보면서 느꼈던 감상과 사뭇 달라졌다. 첫인상은 재미있는 개그 만화였는데, 알고 보니 내용이 그리 가볍지 않았고 철학적인 메시지도 담고 있었다.

 

'미기의 다리'의 대략적인 줄거리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고베 시 키타 구 뉴타운 오리건 마을. 자식이 없는 소노야마 부부가 고아원에서 입양아를 데려온다. 그 이름은 히토리(일본어로 '한 사람'을 뜻하는 말). 그러나 히토리는 사실 한 명이 아니라 두 명이었다. 서로 비슷하게 생긴 쌍둥이가 한 명을 연기하는 것이다.

쌍둥이 '미기'와 '다리'는 어머니의 죽음에 얽힌 수수께끼를 풀려고 오리건 마을에 왔다. 단서를 찾던 두 사람은 어머니의 죽음에 이치조 가문이 연관되어 있음을 알게 된다. 이치조 가문은 마을 내에서 선망의 대상이다. 의사 아버지와 마을 부녀회장 어머니, 모범생 아들과 딸. 누가 봐도 완벽한 가족이다.

그런데 미기와 다리는 이치조 가문의 벽지에서 낯익은 필체를 발견한다. 어린 시절을 보낸 방의 벽지와 똑같은 글씨가 적혀 있었다. 어머니의 무덤에서 발견한 단추는 이치조 에이지의 것이었다. 두 사람은 가발을 쓰고 어머니와 비슷한 모습으로 이치조 가문 사람들을 만난다. 그 결과, 어머니를 죽인 범인이 에이지라는 걸 알게 된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건 미기와 다리도 기억나지 않을 만큼 어린 시절에 일어난 일이다. 당시 다섯 살 즈음 되었을 에이지가 어머니를 죽였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그래도 반응을 보면 어머니를 죽인 범인은 에이지가 분명했다.

사실, 사건의 전모는 이러했다. 미기와 다리의 어머니 메토리는 이치조 가의 가정부였다. 메토리는 매사 완벽한 레이코를 닮고 싶다고 말했고, 한 집에 살면서 두 사람의 관계는 더욱 돈독해진다.

완벽한 가정을 꿈꾸는 레이코한테는 딱 한 가지 고민이 있었다. 아이가 생기지 않는다는 것. 레이코는 메토리한테 자식을 대신 낳아달라고 부탁한다. 마침내 임신한 메토리를 보고 레이코는 크게 기뻐하지만, 사실을 아는 남편이 '완벽하지 않은 메토리'를 더 사랑한다는 것을 알고 충격에 빠진다.

메토리는 미기와 다리, 에이지, 세 쌍둥이를 낳고, 레이코는 에이지만 데려간다. 이후 메토리는 단칸방에만 갇혀 살다가 미기와 다리를 데리고 저택을 나온다. 공원 한 켠에 천막을 치고 살면서도 레이코는 저택에 두고 온 에이지를 생각했다. 크리스마스 이브 날, 메토리는 2층 창가에 서서 에이지를 부른다. 어린 에이지는 메토리가 유령이나 마녀인 줄 오해하고 밀어버린다. 그날 메토리는 뇌진탕으로 목숨을 잃는다.

진상을 알게 된 에이지는 모든 것의 시발점인 어머니를 죽이고, 자신도 함께 죽기로 마음먹는다. 어머니를 총으로 쏘고, 불에 타는 저택에서 어머니와 함께 침대에 누워 있는데 미기와 다리가 들어온다. '너는 앞으로 완벽하게 살 수 없어. 우리 집으로 가서 체리 파이를 먹어야 해.'라고 하며 저택 밖으로 끌어낸다.

저택을 나온 에이지는 자수를 한다. 저택에 난 화재로 뺨에 화상을 입은 다리는 예전처럼 미기 행세를 할 수가 없다. 아예 어둠에 숨어버린 다리를 보며 미기는 걱정하지만, 소노야마 부부한테 말하지 말라는 다리의 부탁에 어찌할 바를 모른다. 어느새 다가온 크리스마스 아침, 크리스마스트리에는 두 명의 선물이 놓여 있었다. 언젠가부터 두 쌍둥이를 구별할 줄 알게 된 노부부의 선물이었다. 그날 이후로 미기와 다리에게는 각자의 인생이 시작된다.

 

이치조 가문의 비밀이 밝혀질수록 분위기는 점점 어두워지지만, 시기적절하게 나오는 개그 컷 덕분에 너무 무겁지도 않은 분위기로 사건이 전개된다. 어떤 장면에서는 이토 준지의 만화를 보는 것처럼 스릴 넘치기도 하고, 어떤 장면에서는 심각한 분위기를 잠시 잊을 만큼 피식 웃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적당한 긴장감을 유지하면서 유쾌한 분위기를 이어나가는 작가의 능력에 감탄이 나왔다.

 

결말에서 전하는 메시지는 두 가지다. 첫 번째는 '삶은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것. 완벽함에 집착하던 이치조 가문에서의 생활을 뒤로 하고, 수감을 마친 에이지는 이제 평범한 삶을 살게 될 것이다. 불이 난 저택에 에이지를 구하러 온 미기와 다리가 말한 것처럼 체리 파이를 입에 묻히고 먹을 수도 있고. 이전과는 전혀 다른 삶이지만, 완벽하지 않을까 봐 전전긍긍하던 예전보다는 나을 것이다. 굴곡이 존재하는 삶이 완벽해야 한다는 전제 자체가 애초에 말이 안 되는 것이기 때문.

 

그렇게 완벽하지 않은 모습으로 '제각기 삶을 살아간다'. 두 번째 메시지다. 작품 내내 한 사람인 것처럼 행동하던 쌍둥이 '미기'와 '다리'는 결말에서 다른 길을 걷기로 한다. 똑같은 삶을 살지 않아도 평생 응원해 줄 든든한 형제가 있으니 혼자 걷더라도 그 길은 외롭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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